영화

<영화> 참 사랑과 희생. 영화 미션(1986)

마뜨료쉬까 2014. 1. 28. 00:51

 

<미션>

제작년도 1986년

감독 롤랑 조페

 

영화 미션의 시대적 배경

 

 

가톨릭의 부패와 종교개혁으로 인해 가톨릭 내부에서는 여러 개혁파가 탄생하는 가운데 예수회가 탄생하게 된다. 당시 예수회는 다른 백인들과는 달리 원주민을 짐승으로 보지 않고 영혼을 가진 귀한 사람들이라 주장했다. 더럽혀지지 않은 영혼을 가진 원주민들에게 선교하여 원주민들이 초대교회와 같은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놀라운 일이 있었다.

 

스페인 왕실은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개척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 했는데 그것은 엔코미엔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동시에 원주민들에게 공물과 강제 노역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였다. 이것은 예수회 신부들에게 라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 상대로 선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좋은 밑바탕이 되었다. 

 

 

영화 <미션>에서 볼 수 있듯이 초창기 예수회 신부들은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선교를 해나갔다. 예수회 신부들은 요한복음 1224(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말씀처럼 그들의 영혼을 위해 선교해 나갔다.

 

예수회 신부들은 직접 언어를 배우며 원주민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예수회 신부들은 특히 의료, 음악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재능이 있었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 땅에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 생활과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고 원주민들의 영혼 구원을 확신했다.

 

 

 

원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 자치구역을 예수회 신부들은 만들었다. 이런 예수회의 활동은 이주민들의 큰 반감을 샀고 이들은 원주민보호구역안에 무력으로 공격하는 일도 잦았다. 결국 신부들은 스페인 국왕의 허락을 받아 정복 이주민들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영화 <미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용병이자 원주민 사냥꾼 로드리고

 

 

과라니족 원주민을 사냥하고 잡아가던 로드리고의 회심은 영화 내용의 중요한 사건중 하나이다. 과라니족 원주민 사냥 당시 도망가는 그들을 향해 총을 발포하고 죽여도 그에게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영화 <미션>안에서 로드리고의 가족과 관련된 정보가 나오는데 그것은 오로지 동생뿐이다. 아마도 그에게 남은 가족은 동생밖에 없던 것 같다. 그들의 형제간의 우애를 볼 수 있는 딱 하나의 장면이 있는데, 차갑던 로드리고가 그의 동생 필리페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그들의 형제간의 우애를 표현한 듯싶다.

 

한 여자를 두고 형제간의 우애는 갈라지게 되는데 로드리고의 화가 동생 필리페를 죽이게 된다. 로드리고는 분에 못 이겨 길거리에 있던 한 남자에게 날 비웃었어!”라고 말하며 시비를 건다. 그러자 동생 필리페는 재빨리 형 로드리고를 말리고 결투를 하다 죽게 된다. 아마 필리페는 형이 그 행인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이 장면이 배우들의 연기에 묻어있었다.

 

 

로드리고의 동생을 죽인 그 후 그는 심한 죄책감에 빠지게 되지만 그가 사냥하고 죽이던 과라니족 원주민들에게 용서를 받게 되고 그는 기독교적 참 사랑을 깨닫고 과라니족 원주민들에게 남아 신부로서 섬기게 된다. 이전 로드리고는 분명 그들을 짐승과 같은 존재로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내면이 바뀌게 되는 용서받는 장면은 크게 인상에 남는다.

 

로드리고가 매고오던 짐 덩어리를 과라니족 원주민이 칼로 끊어 그것을 물에 던지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로드리고는 분명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용서받은 로드리고는 과라니족을 위해 감사하는 길은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신부가 되어 즉 하나님 안에서(영화속에서는 가브리엘 신부가 성경을 전달한다) 그들을 섬기게 된다는 것이다.

 

로드리고가 읽은 고린도전서 13

 

<미션>속에서 많은 성경 구절중 왜 로드리고는 고린도 전서 13장을 읽은 것일까? 로드리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가 깨달은 과라니족 원주민들의 용서는 그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과라니족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로드리고는 가브리엘 신부에게서 받은 성경을 읽는다. 그게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으로 알려저 있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는 내용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성격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

 

성경 속 고린도전서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서신이다. 당시 사도바울은 고린도(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잇는 코린트 지협)에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 고린도에는 많은 잡다한 인종이 모여 있어 우상도 많았고 윤리적으로 방탕하며 음란한 도시였다.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듣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서신이 바로 고린도 전서다.

로드리고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을 때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생활 하는 로드리고의 모습이 나온다. 과라니족의 생활에 한 부분이 되어 도와주며 함께 살아간다. 로드리고가 깨달은 사랑은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기독교적 참 사랑이었다.

 

 

사랑의 두 가지 얼굴

 

포르투갈 군대와 스페인 군대가 공격할 당시 가브리엘 신부를 제외한 나머지 신부들은 과라니족과 함께 그들에게 맞서 싸웠다. 과라니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준 신부들은 무력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사랑으로 함께 싸우다 죽었다. 비폭력으로 대항한 가브리엘 신부는 무력의 행위가 잘 못 되었다고 대답 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또 과라니족을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 축복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아니오. 만약 그대가 옳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필요 없을 것이오. 그리고 만약 틀렸다면 나의 축복은 소용이 없소. 만약 무력이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 사랑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난 이 세상에서 살아갈 기력을 얻지 못할 것이오. 로드리고, 나는 당신에게 축복을 해줄 수 없소.”

 

 

영화 <미션>속 하나님을 알게 된 과라니족 원주민

 

 

과라니족 원주민들은 예수회 신부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사실 영화 <미션>속에서 과라니족이 신부 가브리엘을 통해 어떻게 기독교를 접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는지는 언급되지는 않는다. 과라니족의 신앙의 상태는 어떤지 영화속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살인한 로드리고를 용서하는 장면에서 대략 적으로 알 수 있다. 과라니족의 공동체는 초기 기독교와 같았다고 한다. 그들의 사회, 생활, 신앙은 어때했을까? B.C~325년까지가 초대교회 즉 초대기독교 시기라고 불리고 있다. 당시 예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들고 핍박을 각오한 체 복음을 전하다 제자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하게 된다.

 

영화 <미션>속 과라니족과 로마 대사의 대화에서 보면 과라니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정글에서 나와 이곳에 선교회를 세웠다. 교회를 세우고 삶의 터전에 정착한 그들에게 로마 대사는 그들의 선교회를 버리고 다시 정글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럽 국가들에게 어쩔 수 없이 순복할 수밖에 없는 로마 대사는 죽음의 그림자가 이 선교지에 곧 드리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과라니족 원주민들은 단호히 거절한다. 영화를 보면서 로마대사와 과라니족의 갈등이 좀 더 부각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원주민들이 이런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을 연기하거나 이런 장면을 만들어 촬영하는 대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단호히 거절한 과라니족 원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선교지를 지키지만 모두 죽게 된다.

 

과라니족 원주민들은 핍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따랐던 것일까? 총을 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군대 앞에서 성가를 부르는 과라니족 원주민들은 두렵지 않았을까? 그렇게 죽음으로 잠잠히 전진하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비극적 장면이지만 과라니족의 신념과 믿음은 죽지 않았다.

 

엔니오 모리꼬노의 오보에

 

 

영화 <미션>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엔니오 모리꼬노는 영화 음악감독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미션>에서 등장하는 그의 작품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듣는 이는 멜로디의 여운을 잊지 못하게 되고 잔잔한 여운은 귓가에 맴돈다. 그 대표적인 곡이 바로 가브리엘의 오보에이다. 영화 속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 원주민들과 만날 때 나무로 만든 오보에로 이곡을 연주한다. 오보에라는 관악기 연주곡은 흔하지 않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어보면 정말 과하지도 않고 잔잔한 오보에가 중간 음역을 풍부하게 채워주다 높은 음역에서는 조심스럽고 조용히 소리를 채워나간다. 아름다운 오보에의 소리를 영화 <미션>과 함께 감상할 때면 어느새 눈에서 뺨을 향하여 눈물이 내려간다.

 

영화 <미션>을 보면 대사 없이 음악과 장면만 나오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대사의 부분을 엔니오 모리꼬노의 음악으로 채웠지만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은 마치 하나의 흐름을 이어가는 맥을 잡아주고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따뜻한 장면을 선사한다.

 

 

하늘의 나라

 

 

한 장면 장면을 보고 들을 때 마음에 많은 여운이 남았다. 과라니족의 용서는 나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마음에 남아 있는 이 여운은 잊히지 않으며 눈물로 나타난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기보다 무언가 더 마음에 싸여지는 느낌이다. 과라니족 원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을 잡아가고 죽이던 사냥꾼을 용서하며 선교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평화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 <미션>에서 말하듯이 저들은 살았다라는 말과 같이 그들에게는 참 평화가 있었다. 그들의 마음가운데 있었던 믿음과 신념까지 죽일 수 없었으며 하늘나라를 간접적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롤랑 조페 감독은 영화 <킬링필드>에서 대성공을 거둔 후 만든 2번째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조명을 받으며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영화 <미션>이다. 사실 영화 <미션>을 보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촬영 기법 등 효과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기독교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미션>은 갈등과 사건적요소를 각 장면마다 조화롭고 어색하지 않게 잘 담아냈다.

 

영화 전문가들은 프로페셔널 하지 않다라고 쓴 글과 후기를 많이 볼 수 있었다만 그래도 영화 <미션>만 이 줄 수 있는 분위기와 내용과 연기는 오늘날 까지 흔히 볼 수 없는 영화중 하나다. 아름다운 음악과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미션>을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