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생각> 예술을 정의하거나 분류하는 것이 가능 한가?

마뜨료쉬까 2016. 5. 24. 17:16

예술을 정의하거나 분류하는 것이 가능 한가?

  <지적대화를위한 넓고 얕은 지식> 카페에서 토론하며 나눴던 생각을 정리하여 나눠봅니다. 현대 예술의 정의와 분류를 논하던 중 '비전문가의 참여', '공감'이라는 제 주장에 몇몇 분들이 크게 공감 하셨습니다. 생각을 정리하여 나누고 싶어 공유해 봅니다.

 

예술의 경계선

  오늘날 비전문가의 예술 참여 및 활동으로 부터 점차 예술활동에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의 경계는 무너졌다', '예술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많은 예술가 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예술위해 전문성을 목표로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비전문가의 참여와 비평으로 예술의 수준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시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술의 어원을 보면 그 의미는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오늘날 까지 여러 형태를 가진 표현으로 변형 되었습니다.



 마티스의 <춤>마티스의 <춤>

현대예술

  대표적 예술인 형태로 미술을 본다면 흔히 알법한 화가 피카소, 마티스, 이중섭의 작품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대부분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왜 일까요?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했던 수 많은 습작과 공부, 노력과 시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능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탄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며 말하는 지금 유행하는 현대 예술 중 대표적인 예로 동성애자들의 동성 간 키스하는 행위조차 사랑과 예술이며, 전라 연극 무대 위 성행위를 통해 노골적으로 남성의 욕정을 채우는 그런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연극예술계 최고 거장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극 예술은 최종적으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넘어가는 작업이라고 말하며 그의 평생을 연극 예술을 위해 연기시스템, 연출기법 등 수많은 공식적인 연기 메소드를 제시하였고, 예술은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참된 연극 예술의 진실성을 모두 에게 증명하였고 누구나 인정하는 그만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참된 예술을 작업하기 위해 전문지식과 마음가짐 그리고 예술훈련 단계가 구축되어 어떤 틀 안에서 예술은 유한적인 틀 안에 무한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톨스토이와 아이들톨스토이와 아이들


톨스토이

"어떤 예술가가 대중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의 예술이 지극히 우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현대의 예술가들은 즐겨 입에 올리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대중에게 그 예술이 이해되지 못함은, 그것이 극히 시시한 것이거나, 또는 전혀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톨스토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말처럼 예술이 될 수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예술이 아닌 작품도 있다고 말합니다. 예술의 틀을 가지고 비평과 작품을 판단하던 예전과 달리 현대로 거쳐 오면서 아무런 전문적인 틀 없이 비전공자와 비전문가의 참여와 판단이 오늘날 예술이 성행하는 지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현대 예술이라는 경계

  제 자신 스스로 '현대예술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예술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끝없이 답하기 위해 많은 서적과 글을 통해 정의하고 이해하려하지만 제 안에서는 여러 의문들과 함께 끊임없는 논쟁이 멈추지 않습니다.

 

  시대적 예술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날의 예술을 접하며 현대미술관, 전위연극, 실험극, 현대영상예술관 등을 다니던 중 영상예술관의 어느 한 프랑스 예술가의 작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영상속 갑자기 어떤 남성이 나타나더니 손가락을 목에 넣고 억지로 토를 합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 재생합니다. 그리고 이해 할 수 없는 제목과 설명을 붙여놨습니다.

  다른 일반인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남아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보자 대체적으로 혐오스럽다, 이해할 수 없다, 예술은 어렵다 등 대체로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이 많았고 제목 또한 이해 할 수 없다며 "현대 예술은 오로지 어려운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현대예술은 무조건 특이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라는 모습으로 망가지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내야 하는 걸까?” 포스트 모더니즘, 현대 예술을 이해하고 알아가며 저에게 떠나지 않는 의문점입니다.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재창조 해내던 예술의 기본 틀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저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한 것이지만 이런 작품들로 인해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은 어렵다, 특별하고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예술은 모두가 공감하며 어린아이까지 공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예술가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투자되는 노력과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계적 극작가 안톤 체홉은 자신의 작품 벚꽃동산을 쓸 당시 한 문장을 쓰는데 1주일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작품 창작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안톤체홉조차 작품 한 줄 한 줄에 매달려 쉽지 않은 창작 생활을 했습니다. 이바노프는 200점의 습작을 10년 이상의 시간을 통해 한 작품을 완성했고, 크네벨은 수개월간 공연 작품을 매일 밤샘작업을 했습니다. 무엇인가 빠르게 서두르는 오늘날의 시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삶의 영향이 예술에도 그대로 미치는 것 같습니다. 고전 예술을 알아가고, 이해하며 공부할수록 황금시대주의 사고가 반복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현대예술로 들어오면서 비전문가의 참여빈도가 많아지면서 많은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좋은 예술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력과 전문성을 가진 지식을 통해 표현되는 예술은 과거든지, 현재든지, 미래든지 열매가 있었습니다. 시대가 지나도 오늘날 까지 우리에게 기억된 예술 작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놓치는 부분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진정한 예술은 우리 마음속에 항상 남아 있습니다.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술에 가까울수록 모두의 이해와 공감을 불러옵니다.


  대표적으로 문맹과 고등교육이 없는 백성을 위해 성경말씀을 풀어 연극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전했던 옛 스웨덴 그리고 유럽에서 흥했던 이동극장, 노천극장의 작품들을 함께 전문지식이 없어도 모두가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예술을 위해 전문지식과,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면 스쳐가는 작품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남는 예술을 탄생 시킬 수 있습니다. 재 창조자 역할을 하는 예술가들은 돈과 명예를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작품 하나를 위해 작품을 탄생 시켜야 합니다. 도박으로 인해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쓴 도스토옙스키 또한 돈에 시달리면서 까지 결코 대충 글 한 문장 문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돈이 목적이었다 한들 작품에 돈을 받기위한 의지를 비춰 내지 않았던 그 모습을 보며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어떠한 마음가짐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작품 창작활동에 있어서 남들에게 비춰 질 때는 노력하는 것 같아 보여도, 결코 자기 자신만 아는 대충 대충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더 철저하고 조심스럽게 해쳐 나가야하는 창작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피카소의 <음악가>피카소의 <음악가>


예술가의 창작 목적

  창작의 목적은 청중의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생각과 마음이 느끼는 것을 이용하여 관람객에게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제까지 생각하고 느껴오던 것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고 느껴보도록 질문을 던져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예술가 자신부터 새롭게 생각하고 느껴보며 이성을 통하여 논리적인 형태로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돌이켜 보면 훌륭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 사람은 누구든지 삶의 과제를 정면으로 맞부딪쳐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으며, 예술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표현 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특별한 표현 영역이 나타 납니다.

  작품활동을 하다보면 호기심이 그 작품의 방향성을 잡아 갑니다.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하고자 하는 '호기심' 즉, 지적 목마름이 생길 때 그 목마름은 살아오면서 겪었던 내 삶과, 아픔, 경험이 내 안에서 그 답을 창작의 형태로 표현 합니다. 인생을 파해쳐 무대에 옮길때 마다 그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내가 존재 합니다. 예술가의 정체성과 내 안의 창작의 욕구를 창작을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요즘 많은 작품들 속에 진정한 작품이 가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예술의 길을 걷는 모두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