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물> 러시아 최초의 여성 연극 연출가 크네벨

마뜨료쉬까 2015. 3. 10. 17:06

수업중 들은 러시아 연출가 크네벨 이야기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는 수업도중 우리에게 한 여성 연출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녀는 러시아 여성 배우이자 연출가인 크네벨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었기에 인터넷 포털을 이용하여 찾아봤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스타니슬랍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의 저서를 통해 몇 번 만났던 이름 같기도 하였다.

   한국 인터넷 포털에서는 자세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 담당 교수님은 그녀의 제자로서 모스크바 기치스 연극대학교에서 공부하셨었다.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학생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연기수업과 크네벨 대해여 우리에게 자주 말씀해주시곤 하셨다. 그녀는 스타니슬랍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의 제자로 생활하고 모스크바예술극장 배우로 활동하던 러시아 여성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마리야 오씨뽀바 크네벨

 

  그녀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그녀의 저서와 러시아 현지 포털 검색, 같은반 친구들을 통하여 알게되었다. 크네벨이 죽기전 러시아 공영방송은 그녀의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많은 러시아 연극인들과의 인터뷰 장면이다. 한 남자가 크네벨에게 질문을 한다. “배우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크네벨은 곰곰이 생각한 후 한 단어로 그에게 말했다. “노력, 노력입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노력도 정말 중요하지만 재능을 무시할 수 없다 생각한다. 5년 동안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쉬지 않고 작품 활동했던 연극생활은 나에게 ‘재능’과 ‘노력’의 결과를 맛 볼 수 있었던 생활 이었다. 재능을 지닌 친구들이 노력 또한 겸하니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다. 열정으로 시작되는 노력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노력은 노력일 뿐 결과는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노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잘못 알고 노력한다면 헛된 노력에 불과할 것이다.

 

  크네벨은 연극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어떤노력을 했던 것일까? 노력을 통해 재능과 달란트를 지닌 사람들보다 더욱 좋은 결과를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녀 또한 재능이 있었으라 생각된다. 작지만 이렇게 시작된 나의 궁금증은 그녀의 연극 인생에 관하여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그녀에 대하여 알게 된 사실을 좀 정리해 보려고 한다. 부단한 ‘노력’은 어떤 열매를 과연 맺게 할까?

 

그녀의 유년기

  도서출판업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크네벨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자주 극장에 방문하여 연극을 관람했다. 재미있는 일화로 어느 날 그녀는 톨스토이 무릎에 앉아 그에게 동화 <스칼렛 꽃>을 읽어줬다. 크네벨의 낭독이 마음에 들었을까? 톨스토이는 그녀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아마도 크네벨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크네벨의 소녀시절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본 스타니슬랍스키의 갈매기와 파랑새, 에르몰바 극장에서 본 동화들은 소녀시절 그녀를 더욱 연극예술 속으로 끌어당겼다.

 

  마리야 오씨뽀바 크네벨과 주변지인

 

예술을 만난 소녀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크네벨은 결국, 수학과에 입학하는 대신에 미하일 체홉의 배우 훈련 스튜디오에 입학하게 된다. 20세기 초 당시 러시아에는 예술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공산화된 러시아 즉, 소련은 오랜시간 다져진 러시아 문화와 전통, 규칙, 질서를 무너뜨리게 된다. 혼란의 시기에 크네벨은 창조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처음으로 미하일 체홉 스튜디오에서 연기를 배우던 크네벨은 1921년 극단이 해체되면서 모스크바예술극단 제2스튜디오에 입학하게 된다. 인터뷰 기록을 찾아보면 크네벨은 “자신의 인생중 모스크바 예술극단에 들어간 것이 가장 잘 한 일이었다”라고 한다.

 

  크네벨의 재능과 인상이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메이에르홀드는 크네벨에게 매력을 느끼고 자신의 극장으로 초대하지만 크네벨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만큼 크네벨은 모스크바예술극장에 사랑과 애착을 가졌다. 크네벨은 1929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아저씨의 꿈>에서 배역을 맡아 배우로 활동하게 된다. 이 작품이 첫 시연된 후 어떤이유인지 스타니슬랍스키는 크네벨을 연극에서 제외시킨다. 어떤 이유였을까? 스타니슬랍스키의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었지만, 당시 비평가 및 관객들이 남긴 기록을 찾아보면 당시 그녀의 연기 작업 스타일은 매우 비극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게 작품에 제외됐던 크네벨은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되는데 크네벨이  맡았던 배역을 담당했던 배우가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만 그녀는 덕분에 모스크바예술극단의 배우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별로 명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사진을 통해 그녀를 보면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녀가 웃을 때 보이던 미소는 투박하기도 하고 딱딱하며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는 유머러스한 배역을 진실하고 생동감 있게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연기중인 크네벨의 모습

 

모스크바 예술극단에서

  크네벨은 1931년부터 1938년까지 모스크바예술극단에서 2군 배우로 활동한다. 2군 배우로 활동하기 전 그녀는 체홉 스튜디오 및 스타니슬랍스키의 작품 참여와 극단 생활중 수없는 연습을 쌓았다고 한다. 10년 동안의 연기 경험과 노력이 있었지만 2군에 머물러야만 했던 크네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크네벨에게 좋은 배우 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스타니브슬랍스키의 오페라 스튜디오에서 외적 움직임, 희곡과 배역 분석 그리고 연출가로서의 경험을 쌓게 된다. 스타니브슬랍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 바실리 카찰로프 등 러시아 연극 예술계 권위자들과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크네벨은 자신의 연기적 재능 수준을 이해하고 모스크바예술극단에서 배웠던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토대로 1951년부터 여성연출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55년 어린이 극장의 대표 연출가로 역임하게 된다. 이 때 부터 크네벨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그녀가 어린이 극장 대표 연출가로서 역임하던 당시 러시아 예술계를 이끌 러시아의 젊은 배우 및 극작가들은 크네벨이 담당하고있던 어린이 극장에서 활동을 시작 하게 된다. 그들과 함께 시작한 작품 활동은 어린이 극장의 큰 개화기를 열었다. 크네벨은 자신의 창작활동에서 자신의 성실성과 고유성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녀는 첫 작품으로 3개의 작품을 시연하는데 <대학교들>, <간계의 예술>, <크레믈 탑시계> 그리고 <고난의 해>가 있었다 크네벨은 작품을 통해 자신이 하지 못했던 연극적 연출방식을 더욱 공부하고 알기 원했다. 무엇보다 크네벨은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희곡을 직접 읽어주고있는 체홉, 주변에 고리끼,스타니슬랍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의 모습이 보인다.

 

연출가로서의 인생

  크네벨이 연출가로 활동할 당시 평론가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크네벨은 극 연출에서 서론, 연출 어간, 미장센 구축을 이해하고 사용했다고 기록한다. 크네벨의 제자였던 우리 교수님의 수업방식 또한 그녀가 가르치던 미장센의 방식을 가져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당연히 우리 교수님은 그녀와 다르게 수업을 진행하셨었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던 연극 용어에 대하여 자주 정의해 주시고 말씀 해주셨던게 기억난다.   

(미장센 구축은 크게 연출가가 지닌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연극에서 미장센이란 연출가의 능력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미장센을 통해 자신의 해석과 생각을 만들고 표현할 수 있다.)

 

  크네벨이 어린이극장 대표로 활동하던 당시 아이들을 위해 어떤 작품을 선택하였으며, 어떻게 해석되었고 연출되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단순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짧은 극을 만들었을까? 당시 함께 예술의 문을 열어가던 배우와 작가들과 의 교제는 어떠했을까? 공동 예술이기에 연극은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제가운데 탄생한다고 생각하기에 크네벨의 인간관계가 궁금해지긴한다.

 

  분명 크네벨도 스승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물어 볼 수는 없지만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토대로 이해하고  배우예술을 발전 시켰던 그녀의 저서를 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크네벨은 소련시대 작가 아르부조프, 빠고디나, 로조프, 시모노프, 알렉세이 톨스토이등 당시 소련시대 문학계 활동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해석 했으며 그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했다. 크네벨은 연출가로서 체홉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주로 추구했으며 크네벨은 “체홉은 위대한 시인이자 사람의 인생 중 균형 잡히지 않은 모습과 상실한 인생의 모습을 표현했다”라고 극찬하며 셰익스피어는 자연 현상에서 일어나는 무언가 신비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크네벨은 은유적인 연출가로 당시 알려졌으며, 연출의 위치는 배우와 작가로 결정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소련시대 당시 유명했던 연출가 뽀포프등 몇몇 남성 연출가들과 합작하여 작품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가진 문학적 해석과 지혜는 어떠했을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직접 느낀 것은 연출가에게 문학적 해석과 이해는 작품에 큰 영향력을 지닌다 생각된다.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을 무대에 세우는 작업에 있어서 작품 이해도는 극 자체의 흐름을 주도하고 정확한 색깔을 지닐수있도록 만든다. 수많은 작품을 읽고 또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주제와 사건을 정확하게 올바른 연극적 기준의 따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크네벨의 제자였던 우리 교수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책을 똑바로 읽어라!!”, “너희는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것일까? 당시 노어로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 말의 뜻을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작품의 주제를 정확히 구분지어 주시고, 작품을 해석할때는 교수님은 작품의 흐름과 맥을 정확히 찌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배우들이 쉽게 작품을 이해하고 재미있게 시도할 수 있게 설명해주셨다. 크네벨이 자신의 제자들을 양성했을 때도 이렇게 했을까? 나또한 연습을 진행하거나 교육 한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진행 하겠지만 담당 교수님의 가르침과 방식, 생각, 습관은 무의식 어딘가 내 삶속에 녹아들어가 나타날 것이다.

 

그녀의 연출 시도

  연기자의 삶을 뒤로하고 크네벨은 연출 및 교육자의 삶을 이어갔다. 그녀의 연출 기법에 대해 궁금하여 찾아보던중, 당시 연극 비평가들이 평가했던 크네벨에 대해 찾아볼 수 있었다. 1965년 소련 군 극장에서 크네벨은 벚꽃동산을 연출하게 된다. 벚꽃동산 작품 내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요소와 드라마 및 극작가의 제안된 상황 및 역사, 사회적 실태를 범주로 작품을 해석하고 무대에 세웠다 기록한다.

 

  그녀는 특히 작품을 은유적으로 연출하고 세웠다고 말하는데, 학생시절 은유적 연출이 무엇인지, 은유적 작품이 무엇인지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것이 기억난다. 그 예로써 같은반 친구의 작품선택, 연출방식을 보고 교수님은 그 친구에게 "은유적 연출가"라고 칭호를 주었다. 무언가 알송달송하면서도 암시해주는 그런 연출, 이런것 까지 염두해 두고 친구는 연출하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재능이 "은유적인 연출가"라는 호칭을 받도록 만들었다. 무엇인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연출가가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연출기법을 크네벨 또한 지니고 있었다고한다.

 

모스크바의 안치된 크네벨의 묘

 

  은유적인 해석으로 크네벨은 극작가 오스트롭스키의 <재능과 애호자들>을 1970년 마야콥스키 극장에서 작품을 상연 하면서 구상과 구체화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크네벨 자신이 모스크바예술극단 활동을 하면서 직접 연기했던 도스토옙스키의 <아저씨의 꿈>과 살티코프 쉔드린의 <그림자들>또한 스타니브슬랍스키 극장에서 연출했다. 크네벨은 자신이 모스크바예술극단 배우로 참여했던 도스토옙스키의 <아저씨의 꿈>과 같은 경험했던 작품들은 무대에 세웠다.

 

  대학교 생활중 교수님께서 연출 하셨던 작품들을 나또한 연출할 계획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교수님께 배웠던 작품이고 내가 직접 배우로 활동했으며 내가 존경했던 교수님이 직접 연출했던 정든 작품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색이 짖어지기 마련이지만 그 중심에 과거의 내가 있다.

 

  비평가들을 통해 크네벨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그녀는 연출을 날카롭지 않았다고 한다. 직설적이지 않은 비난과 희망 없는 인생에 관하여 무대에 표현 하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녀는 단순한 코메디극 또한 즐겨 무대에 연출 했으며 그녀의 유머감각은  배우를 통해 무대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작품활동에 있어서 크네벨은 언제나 성실했으며 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책임을 졌고 관객 앞에서 숨기는 것 없이 자신을 드러냈다고 한다.

 

 크네벨은 <Действенном анализе пьесы и роли> <효과적인 희곡분석과 배역>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남겼다.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네미로비치 단첸코의 이야기, 그녀의 기억을 토대로 쓰인 크네벨의 마지막 연극저서다. 그녀의 책을 읽어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스타니슬랍스키와 단첸코와 함께했던 경험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또한 그들의 지식을 이해하고, 믿고 따랐는지 알 수 있었다. 연기를 가르쳤던 자신의 스승을 끝까지 믿고 그것을 토대로 평생 예술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결과는 값지다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과 연극적 경험들은 이미 러시아 연극계에 크게 알려져있다. 크네벨의 노력의 결과는 오늘날 연극예술을 접하는 우리에게 '크네벨'이라는 인물을 공부하고 기억하게 한다. 

 

 크네벨에 대하여 알게된것이 참 감사하다. 이 글에 모두 옮겨 적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를 통해 알게된 연극적 지식과 논리, 지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것 같다. 소련시대 당시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작품을 연출하고 교육하는 자리에서 열정을 지켰다는것도 대단하다. 그녀의 노력의 기반이 되었던 열정이 가장 귀한 열매가 아닐까? 열정없는 노력이 무슨소용 있으랴. 단지 빈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크네벨 저서

Вся жизнь <삶의 전부>(1967)   

Слово в творчестве актера  <배우창작용어>(1970),
Поэзия педагогики <교육학> (1976)
О действенном анализе пьесы и роли <효과적인 희곡분석과 배역> (1982).